서용선의 생생한 생각: 단종 드로잉 기간 : 2026-04-23 ~ 2026-06-06 장소 : 갤러리JJ 문의처 : 02-322-3979 요금 : 무료 전시 서울 예매하기

상세정보

그리기’라는 것은 하나의 행위이자 태도죠, 이것은 작가의 정신과 연결되는 가장 긴밀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서용선, 2016년

갤러리JJ는 ‘그리기’를 중심으로 ‘인간’ 탐구를 실천해오고 있는 작가 서용선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 《서용선의 생생한 생각: 단종 드로잉》은 갤러리JJ에서 열리는 서용선의 여섯 번째 전시로, 역사 연작 가운데 단종 주제의 드로잉 작업을 조명한다. 본 전시는 서울의 네 개 갤러리와 영월의 전시관에서 각각의 특성을 가지고 동시에 진행되는 《서용선의 단종 그림》 연합전시 중 하나로, 작가가 1986년부터 현재까지 40여 년을 이어 온 단종 작업의 흐름을 드로잉을 통해 살펴본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그의 작품들은 강렬한 색채의 표현성이 짙은 회화였다. 이와 관련되었지만 좀처럼 볼 기회가 없었거나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단종 드로잉들을 마주하는 일은 무척 새롭고 재미가 있다. 지금까지 작가의 작업에 대한 수많은 고찰이 있어 왔음에도, 이번 전시는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드로잉이라는 방식과 서용선 예술 화두의 정점인 ‘역사’ 작업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을 탐색해온 단종 주제의 특성상, 그의 작업 근원에서의 깊은 소통이 기대된다. 전시는 익숙하고도 낯선 단종 역사, 서용선의 생생한 생각들은 어떻게 그림의 공간에서 만날 수 있으며, 지금도 어떤 예술적 화두로서 새로운지 들여다보고자 한다.

서용선은 일찍이 1980년대 초 작업 활동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한반도를 포함하여 지구촌 곳곳을 끊임없이 다니고 세상을 관찰하면서 작업을 펼쳐왔다. 서울, 뉴욕, 베를린과 같은 현대 도시 공간에서부터 철암(2001-), 독도(2003-), 양평 가루개마을(2020-2021), 암태도(2022-2023) 등 공동체 현장과 공공미술프로젝트, 영월의 청령포와 같은 역사ㆍ문화적 기억이 깃든 장소에 이르기까지 인간 삶의 조건을 마주하는 그의 곁에는 늘 스케치북이 있었다. 그는 역사와 신화를 문헌으로 고찰하고 현장을 방문하여 실제로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람들과의 진솔한 만남과 이야기를 자신만의 감각으로 체화해 드로잉으로 남겨왔다. 스치는 순간이나 인상을 재빠르게 드로잉으로 생생하게 포착하고 기억하며, 현장에서의 광고 전단지나 포장지조차도 적극 활용하는 등 순간의 사고와 활동의 흔적들을 남기고 치밀한 생각 전개의 자취를 남긴다. 곧 작가는 자신이 속한 도시의 분위기를 기록하고, 역사의 기록과 이야기로부터 생각을 끌어오고 기억하는 행위로서 드로잉을 일상 속에서 습관처럼 실천해 오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궁금해하는 그의 관심사가 결국 삶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목격하고 몸으로 체험해야 가능한 일이기에, 신체 행위가 적극 반영되는 날것 그대로의 드로잉 표현 기법이야말로 그의 작업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최적의 방식일 수 있다. 시각예술 자체가 드로잉을 품고 있겠지만, 역동적인 ‘선’들의 터치가 특징적인 서용선의 작업은 선의 기본인 드로잉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작가가 늘 자기 자신에서 시작하여 세상을 알아가고 기록하기 위해 그림을 시작한 이후 지금껏 일관되게 이어온 작업 방식 중 하나가 바로 드로잉이다. 드로잉은 그의 작업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그의 회화적 관심이 가져온 독특한 조형세계의 흔적이다. 이미 그의 1986년까지의 초기 드로잉을 모은 두 권의 책이 출간되어 있다. 또한 작가가 직접 저술한 소책자 『유럽미술의 변화ㆍ소묘』(1986)를 통해서 동서양의 전통회화 이론과 함께 드로잉, ‘그린다는 것’에 관해 깊은 관심과 이해를 보임으로써 드로잉이 그의 시각 언어에서 주요한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2006년에 국내에서 최초의 드로잉센터인 소마드로잉센터(SOMA Drawing Center)가 개관할 당시 뉴욕의 드로잉센터를 방문하는 등 그가 초기 준비위원으로서 역할을 한 바 있다. 그의 드로잉 개인전은 1995년 뉴욕에서의 《자화상 드로잉》을 시작으로 2016년 아르코미술관에서는 대표작가전시로 방대한 규모의 서용선 드로잉을 택했다.
이번 ‘단종’ 주제의 연합전시는 2014년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의 《역사적 상상-서용선의 단종실록》 전시 이후에 이 주제를 가장 폭넓게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전시일 것이다. 1993년 신세계갤러리의 개인전 《서용선 1987-93 노산군(단종)일기》를 시작으로, 그동안 수많은 전시를 통해 잊을 만하면 우리는 단종 역사 그림을 다시 마주하곤 했다.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단종 연작은 ‘역사’를 화두로 서용선 작업세계의 중추를 이루며, 우리의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 속 흔적 같은 독특한 위상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당시 우리가 시각예술에서 흔히 접할 수 없었던 한국 역사의 기억을 형상화하여 시선을 사로잡았고 현대 역사화에 관한 논의를 한국 화단에 불러올 수 있었다.
소나무 그림으로 화단에 데뷔한 이후 서용선의 ‘역사’ 작업은 자화상, 당시 변화무쌍하게 현대화되어 가는 도시 서울의 모습을 지나서 지구촌 도시 공간을 향한 작업, 신화 작업으로 모습을 바꾸면서 저마다의 군락으로 오늘날 삶의 현실과 조건에 본질적으로 연결된다. 작가는 “현실의 모습은 역사화된 것”이며, “그림 그리기는 현실의 겉모습을, 사실의 흔적들을 헤쳐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나 현재나 어김없이 작동하는 부조리한 삶의 현장에 내재한 메커니즘이나 보이지 않는 힘은 특유의 표현성으로 왜곡된 비현실적인 평면을 가로지르는 불가사의한 에너지로 나타나 우리 앞에 리얼한 기록으로 다가선다. 노산군일기를 시작으로 한국전쟁, 철암그리기 등 대부분의 연작들은 각각 십수 년 전에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그에 관련된 이야기, 역사의 기억들을 소환하면서 긴 궤적을 남기는데, 이는 서용선 예술의 특별한 점이다. 단종의 비극적 삶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는 그중 작가가 가장 오래도록 천착하고 있는 소재다. 누구에게는 아니 대부분에게는 구태의연하거나 이미 잊힌 작은 역사, 혹은 역사가 되지 못한 한 조각 이야기일 수 있으나, 작가에게 그것은 ‘지금 여기’에 있다.

1. 서용선의 단종 드로잉
현재까지 단종 드로잉 작업은 무려 380여 점에 이른다. 이번 전시는 <오세암>(2025), <청룡포>(2026) 등 신작을 비롯하여 약 40여 점의 드로잉 작품들로 구성되며, 노트 및 스케치북, 자료들도 함께 전시된다. 전시는 단종 그림의 단초가 되는 1980년대 초기 드로잉 습작까지 맥락을 따라가 본다. 단종 그림은 1986년 영월의 청령포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러한 역사 주제의 그림에 대한 생각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효종의 북벌계획과 임진왜란 등의 드로잉들로 남아있다.
단종 드로잉은 <계유년>, <모의> 등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과 단종복위운동을 둘러싼 사건의 재구성, <소년왕>(2006)의 단종을 비롯한 세조 및 김시습 등 사건 속 인물들, 이와 관련된 장소들이 그 내용을 이룬다. 이들은 페인팅보다 더 다양한 구성과 같은 제목의 여러 유형으로 재구성되었다. 전시 공간은 약 40년에 걸친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의 흐름을 내재하고, 드로잉의 특징인 선을 중심으로 면과 형태의 조형적 요소를 반영하여 전개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중이 달라지는 인물이나 사건, 상호 간의 조형요소들의 변화나 혹은 직접적으로 포착된 생각으로부터의 의식적 흐름과 같은 간극이 드러나면서 이에 관객 스스로 역사의 파편들을 재조립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단종 드로잉은 페인팅과 비교했을 때, 단종 역사 작업에 대한 작가의 여러 가지 생각들이 좀 더 생생하게 드러나는 듯하다. 먼저 회화의 표출적인 색채에서 오는 주관적 감성을 배제한 개념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또한 선을 중심으로 하는 조형요소들이 그림 속 어떤 세계를 향해 무한히 열리고 확장되는 듯 결코 하나의 의미로 환원되지 않아 상상력이 확장되고 자유로울 수 있다. 서용선 특유의 일필휘지 단호한 선들은 페인팅이 가진 묵직한 물질성 대신 날것의 즐거움, 신체 움직임이 주는 원초적 에너지를 감각하게 한다.

2. 확장하는 선, ‘미완’의 특성
드로잉에서 ‘draw’는 ‘그리다’이면서 동시에 ‘끌어내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즉 드로잉은 무언가를 끌어내어 흔적으로 남기는 행위이며, 인류의 가장 오래된 예술적 행위 가운데 하나이다. 드로잉과 같은 의미로 르네상스 미술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디세뇨(disegno)’ 역시 단순한 선긋기를 넘어 정신 속 관념이 시각적 형태로 나타나는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20세기에 들어 조형요소인 선과 색의 공존과 함께 회화와의 경계가 흐려졌고, 특히 세계적인 미술 경향이었던 1960년대의 개념미술을 거치면서 드로잉은 더 이상 회화의 준비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그 자체의 미적 가치를 지닌 독립적인 예술 형식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서용선에게 또한 드로잉은 단순한 밑그림이 아니라 생각과 기억을 끌어내는 행위이며, 자신의 작업 의도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매체이다.
곧 단종 연작에서 드로잉은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도구라기보다 작가의 사유가 생성되는 장으로 작동한다. <계유년>, <모의> 등 계유정난을 둘러싼 장면들은 인물과 건축, 사건이 하나의 평면적 공간 안에서 교차하며 구성된다. 서로 다른 시간과 사건들이 동시에 한 화면에 등장하기도 하며, 궁궐 지붕을 투과해 내부 사건을 드러내는 등 독특한 공간 구성은 역사적 서사를 하나의 ‘그려진 사건’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방식은 사건의 서술성을 유지하면서도 관람자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역사적 장면을 바라보도록 만든다.
단순한 선과 색으로 지극히 절제된 요소들의 화면은 오히려 디테일한 내러티브를 희생하는 대신 불분명하지만 어떤 의도를 향한 가능성과 창작의지가 직관적으로 와닿을 경우가 많다. 작품들은 서사적인 내용을 다루면서도 단순하고 원초적인 조형언어로 인해 직관과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힘찬 획을 중심으로, 회화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던 색채는 색선이 되거나 자체로 형태를 이끌어내면서 함께 드라마틱한 그림의 공간을 창출한다. 이들은 어떠한 의미를 발생시키지만 또한 선과 형태들이 바깥과 내부로 열려 있어 그 어떤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지는 않는다.

드로잉 자체로 그려진 것도 있지만, <계유년>(2006) 등 많은 드로잉들이 캔버스로 다시 옮겨졌다. 이때 드로잉들은 작은 지면일지라도 화면을 가로지르는 긴장감이나 에너지는 거대한 페인팅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어디론가 결정되지 않은 채 확장하고 생성하는 듯한 추상적인 선들이 생생하게 드러나면서 무한함과 연결되는 어떠한 자유로운 감각적 즐거움도 준다. 대상의 충실한 재현보다 움직임에 열려있는 ‘선의 충동’이 전체 화면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음이다. 선이 원칙이라는 고전적인 견해를 깬 세잔과 같은 반아카데믹적 작가들이 색으로 그 경계를 해체했지만 인간의 원초적 행위인 드로잉에서 선은 가장 본질적이자 일차적이다. 디세뇨가 ‘선’으로 끌어내는 시각 형태의 의미로 강조되었듯 회화와 조각과 건축이 독립하여 자율적 형식을 갖추게 되었지만, 조형예술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선묘(dessin)에 의한 형상화이다.
철학자 장 뤽 낭시(Jean-Luc Nancy)는 드로잉을 “시작도 끝도 없는 선의 존재”라고 말하며 그것을 하나의 고정된 의미가 아니라 도래하는 흔적으로 이해했다. 예술이 “세계에 없는 것이 세계에 도래하는 사건”이라면 드로잉은 단순히 이전에 있던 것을 시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식도 앞서 주어지지 않은 사물의 드러남”이다. 서용선의 드로잉 역시 신체의 움직임에서 비롯된 선의 충동을 통해 역사와 기억을 현재 속으로 불러온다. 그것은 출발점이 된 참조대상 그대로 고정되거나 견고한 의미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도식적이거나 정형적인 것으로부터 탈피하는 불명확성, 시작인 동시에 끝, 완성인 동시에 미완성인 열림의 미학이 가능해지는 지점이다. 미완은 결핍이 아니라 그 자체로 열림의 형식이다. 서용선은 “선을 긋는 데에서는 이미 완성된 그림을 암시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선은 서용선의 드로잉에서는 그의 또 다른 예술적 원천일 수 있는, 모든 것의 시작이자 모든 형상의 근원인 ‘일획’(석도)의 단호함이 또 다르게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3. 기억과 기록, 삶의 역사성
애초에 쓰기와 그리기, 읽기와 보기에 함께 열려 있는 ‘선’의 존재로서, 작가의 드로잉은 마치 일기처럼 작동하여 사건들, 이야기들 혹은 장소에서 매 순간 호출되는 것들을 이미지의 형태로 고정시켜 펼쳐놓는다. 그는 늘 기록하고 과거사를 보존하는 태도를 보인다. 시간의 흐름에서 탈락하여 스치는 이미지와 글쓰기는 그 순간에 인식되지 않으면 복원할 수 없는 과거의 진정한 모습일 수 있다. 서용선은 자신의 처음 생각이나 기억을 유지시키기 위한 장치로서, 드로잉이 어떤 점에서는 완결된 조형적 요소와 장치가 많은 페인팅보다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생각이 더 잘 드러나 보인다고 말한다. 감각적으로 체험될 수 있는 드로잉의 조형성은 모방론에 근거하기보다 사실적인 것을 지배하고 파악하려는 정신성에 기초를 둔다고 할 수 있다. 읽기와 보기가 중첩되는 드로잉의 매력은 선의 감각성과 더불어 이처럼 마음속의 불분명한 구상을 선명하게 가시화하는 데 있을 것이다. 곧 그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바사리(Giorgio Vasari)의 말처럼, 인간과 삶에 대해 우리가 지닌 생각, 아이디어들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열매 맺게 하는 일이다. 대상이 주는 느낌이나 눈앞에 대상이 없더라도 섬광처럼 스치는 기억과 이미지, 그 단초를 붙잡아두는 즉각적인 기록으로서의 드로잉은 곧 사회와 역사물의 시작이다. 이러한 드로잉은 서용선의 작품세계의 근본적인 골조이자 지지하는 단단한 토대로 작용한다.

단종 작업은 동서양미술의 과거 역사에 대한 많은 관심과 함께 특히 작가가 오래전에 토로했듯, 당시 한국미술현장은 물론 우리 미술역사에서 잘 볼 수 없는, 역사나 신화를 소재로 하는 서양 고전작품의 탄탄한 전통과 대비하여 작가 스스로의 정체성과 관련한 독자적인 ‘역사 그리기’에 대한 나름의 모색에서 출발한다. 고대 비극이나 문학에서의 비극성에 대한 서사적 관심은 한국 과거사 속 단종과 세조라는 인물을 통한 비극의 감정과 인간의 욕망에 대한 회화적 표현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서로 다른 사유와 경험에서 나오는 동서양의 감각 사이에서 다분히 한국인 작가로서의 정체성, 살면서 저절로 ‘몸’에 배어 있는 것들에 대한 궁금증 같은 것들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그림 그리기’란 자신과 주변에 대한 형태 표현을 통한 이해 과정이며, ‘역사 그리기’ 또한 자신을 형성시킨 과정을 알아내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차이와 특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학자 딜타이(Wilhelm Dilthey)에 의하면, ‘역사적 의식’이 곧 자기인식의 한 방법일 수 있다. 삶이란 타인들과의 상호작용의 연속이며, 또한 그 가운데 타인들과의 연관관계가 생성되는 과정이다. 역사 그리기를 포함해 그동안의 철암부터 암태도까지 수많은 공동체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삶 자체’로 이어지는 서용선의 작업은 결국 삶의 공동체로서 더불어 함께 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향하고 있지 않은가? 시공을 넘어 조건 지어진 ‘사회 구조’ 속에 얽혀 자아를 상실한 인간의 비애와 그 본질적 특성, 인간의 역사적 운명과 실존적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배제되거나 괄호 쳐진 것들의 침묵은 역사에 본래부터 내재해 있다. 역사에서 배제된 노산군은 물론 엄흥도, 송씨부인, 안평대군 등 작가는 상징적 질서로부터 추방되거나 흔적이 희미해진 실재들을 소환하기 위해 재현체계의 틈을 내고, 그것들은 그림의 실재가 된다. 다른 연작 속 이름 없는 광부들, 세월호 사건, 현재 도시를 떠도는 이름 없는 소시민들도 마찬가지다. 그의 작업이 수많은 문헌적 기록을 탐색하면서 전쟁이나 정치적 상황 등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만 그것이 특정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선호, 영웅의 신화가 될 수 없는 것은 주어진 시대 상황 속에 얽혀 살아가는 개인들이 겪는 삶의 흔적과 실존적 고통에 관한 질문이자 결정할 수 없는 사람 내면의 모습을 포착하고자 하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종결된 것이 아니라 시간을 관통하여 현재가 된다. 지속적인 탐사와 기록을 통해 역사에서 건져 올린 기억들, 현 상황에 따라 떠오르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들이 있다. 최근 작가와의 인터뷰에 의하면, 노산군의 비극적 삶에서 비롯된 단종 그림 연작은 “처음에는 인간사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어느덧 조선의 성립 초기 역사 그림으로서 관심의 폭이 넓어졌다.” 역사는 끊임없는 해석이 뒤따르고 작가의 생각도 변화와 새로운 사실들에 놓이면서, 자신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삶의 세계를 향한 탐색은 그 넓이와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역사 서술이란 “위험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치는 어떤 기억을 붙잡는다는 것”이라는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생각처럼, 그의 회화적 기록은 다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떼어낸 어떠한 역사의 이미지들에서 성좌를 만들어 현재를 풍부하게 인식하고 우리의 현재 모습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다.

최근 작가가 뉴욕에서 그린 <오세암>(2025) 드로잉은 마치 투명한 형상의 한 폭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서용선 예술 기저에 흐르는 동양 전통회화의 기본을 반추하는 듯, 그의 작업을 특징짓던 강렬한 표현보다는 단순함과 관조적 양상으로 다가선다. 단종 역사 드로잉은 작가가 치밀한 인문학적 연구와 함께 역사와 그 기억이 새겨진 온갖 현장을 누비며 몸 체험으로 엮어내는 지난한 예술 노정의 최전선에서 맞닥뜨린 생각과 감각의 뭉치이다. 본 전시는 드로잉이라는 근원적 방식으로 서용선 예술 세계의 핵심을 만날 수 있는 뜻깊은 기회가 될 것이다.

글│강주연 Gallery JJ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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