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게 도착한 이미지들을 위한 교향곡: Silly Symphony 기간 : 2026-03-26 ~ 2026-05-17 장소 : 부천체육문화센타 문의처 : 02-723-7133 요금 : 무료 전시 경기 예매하기

상세정보

갤러리조선은 오는 3월 26일부터5월17일까지 이은의 개인전 《Silly Symphony》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1929~39년 사이 디즈니가 만든 75편의 “미키 마우징” 기법에 기반한 단편 만화영화 시리즈 『Silly Symphony』 중 1932년에 제작된 “3색 테크니컬러가 도입된 최초의 상업적인 풀컬러 영화” 「꽃과 나무들(Flowers and Trees)」을 원본으로 한 롤페인팅이 메인인 전시이다.

작가는 회화를 하나의 정지된 장면이 아니라, 지속 중인 상태로 바라본다. 그의 작업은 현재에 정확히 도달하지 못한 표정과 이미 지나간 이후에 머무는 동작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시간의 어긋남에 주목한다. 반복되고 이어지는 장면들은 완결되지 않은 채 서로를 향해 미끄러지며 하나의 느슨한 리듬을 형성하고, 그 흐름 속에서 회화는 완결된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을 품은 구조로 인식된다. 여기서 ‘교향곡’은 완벽한 조화가 아니라 서로 다른 속도로 도착한 이미지들이 공존하며 만들어내는 열린 상태를 의미한다.

"7분 50초가 30미터로 늘어나는, 수개월간 “해피 에버 애프터”의 한 텍스트를 되감으며 칠하기를 통과했다는 것, 수많은 움짤들이 곳곳에서 회화적으로 배치된 장면을 구성했다는 것, 누구나 동등하게 납작한 이미지일 뿐인 저질의 필름을 필사했다는 것, 비행위(inaction)와 연접하는 이 무의미한 필사의 쾌락에만 헌신했다는 것, 1930년대를 에워싼 대공황이라는 맥락을 지운 채 그 시대의 텍스트를 전유한다는 것. 작가는 “시간이 지난 것을 볼 때 빛이 바랬고 먼지가 쌓인 유토피아를 감각한다”는 말로 자신의 강박증적인 퇴행의 동기를 설명했다. “먼지가 쌓인 유토피아”란 탁월한 문장은 MZ 세대가 감각하는 파국, 묵시록적 세계감을 전달하는 것이다.”

전시 서문 중, 양효실

이은은 오랫동안 움직이는 이미지를 그려왔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대상의 동작을 재현하기보다는, 이미지가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상태에 가깝다. 회화 속 표정과 동작은 언제나 지금보다 조금 늦거나, 이미 지나간 이후의 상태로 남아 있다. 이 지연된 시간 속에서 회화는 하나의 장면으로 완결되기보다 반복되며, 비슷한 표정은 다시 나타나고 끝났다고 여겨진 장면은 다른 형태로 돌아온다.

작가는 이러한 반복과 지연을 회화의 결함이 아니라, 회화가 시간을 품는 방식으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그래서 이은은 하나의 이미지를 잘라내기보다는 화면을 길게 늘이는 쪽을 택했다. 캔버스에 바퀴를 달거나, 프레임 없이 이어지는 화면을 선택한 이유도 이미지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함이 아니라, 이미지가 스스로 멈추지 않도록 지탱해 주기 위해서였다.

최근의 작업에서 회화는 점점 하나의 장면이 아니라 지속 중인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회화는 여전히 어딘가에 걸려 있지만, 그 안에서는 시간이 흐르고, 표정은 늦게 도착하며 장면은 끝나지 않은 채 다음으로 넘어간다. 작가는 회화를 완성된 이미지로 제시하기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로 열어 두고자 한다. 이 미완의 상태 속에서 회화는 작가와 관람자 모두에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과연 ‘지금’인지 다시 묻게 한다.

허락 없는 리듬, 공유된 움직임

- 이 전시는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1930년대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한 ‘러버 호스(Rubber Hose) 스타일’은 관절 없는 몸을 발명했다. 팔과 다리는 고무처럼 늘어나고 휘어지며, 캐릭터의 몸은 트라우마를 경험하지 않으며 매끈하고 유연한 신체를 가진다. 그들의 몸은 물리적 상처 대신 리듬과 탄성에 의해 움직인다.

역설적이게도, 이처럼 유연한 움직임을 발명한 문화 산업은 오늘날 가장 뻣뻣한 저작권 장벽을 세운 주체가 되었다. 대중문화 속에서 자유롭게 증식하던 이미지들은 점점 더 법적 소유의 경계 안으로 묶여 갔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이미지들은 애초에 그렇게 단단히 고립된 채 존재하지 않는다.

로렌스 레식은 『자유문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스스로는 해적국가로 탄생했으면서도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자신과 유사한 어린 시절을 보내도록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초기의 미국 문화 산업 역시 유럽의 문학과 이미지들을 거의 무제한적으로 복제하고 변형하며 성장했다. 문화는 그렇게 축적되고 변주되는 공유된 장 속에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 순환의 고리가 점점 더 좁아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번 작업은 그 경계 위에서 시작된다.

나는 디즈니의 캐릭터를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캐릭터들을 화면 속에 다시 등장시킨다. 캔버스 위에서 캐릭터의 몸은 다시 늘어나고, 형태는 다시 리듬을 따르며, 장면들은 원래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시간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익숙한 이미지는 여전히 알아볼 수 있지만, 그들은 더 이상 1930년대 속 저화질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기업은 특정한 이미지를 소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지를 기억하고 변형하며 다시 사용하는 감각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작업은 복제가 아니다. 그것은 ‘읽기 전용(Read-Only)’ 문화로 봉인된 이미지를 다시 ‘읽고 쓰는(Read/Write)’ 문화로 되돌리려는 작은 전유의 실험이다. 마치 샤워 중에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흥얼거렸다고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듯, 나는 한때의 실리심포니를 다시 한 번 흥얼거려보고자 한다.

오시는 길

주소 : 경기 부천시 원미구 조마루로 2 부천체육문화센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