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은 최근 몇 년간 색채와 구도, 면으로 재해석한 미국 서부의 대로와 그 주변풍경을 어번 오딧세이(Uran Odyssey)시리즈로, 한옥의 주춧돌, 벽면과 기단의 고졸함을 고요의 시학(Poetics of Tranquility) 시리즈로 풀어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사막(earth)과 래핑(wrapping), 빌보드(billboard) 시리즈는 앞선 작품들과 시간적으로 앞뒤하면서 영향을 주고받은 작품들이다. 미국 서부 모하비 사막을 통해 쓸쓸하면서도 숭고함의 풍경을, 버려진 가건물을 야광 테이프로 감싼 래핑 시리즈와 흔적이 고고학처럼 남은 빌보드를 통해 삶의 지층을 엿볼 수 있으니 모든 시리즈는 서로 얽혀있는 셈이다.
사막에 대한 소재로서의 흥미로움은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될 터. 작가에게 사막은 ‘내밀한 은신처이자 인내를 배우는 깨우침의 장소, 영적인 위로와 안식의 집’(신혜경)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막은 도시 삶과 환경에 극명하게 대비됨으로 인해 흥미롭다. 사막 안에서 우리는 머물러야하고 빛과 색채의 향연을 기다려야 한다. 이 머무름의 시간은 아도르노가 얘기했듯 예술 향유의 필요불가결한 시간 경험이다. 하지만 이는 예술 창작자에게도 대상을 향한 구원과 같은 시간이다. 머무름은 기다림과 다른데 이유는 머무름에는 어떤 결과와 미래의 대상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위의 산책자 같은 시간 경험인 것이다. 머무름을 사물의 증식에 반대하는 반자본주의적 행위로까지 해석하지만 무엇보다 머무름은 홀림, 어떤 대상에 경도하는 유일무이한 아름다움의 순간이다. 미적 황홀경을 잉태할 수 있는 시간이다. 김우영의 사막은 이러한 머무름의 순간, 영원한 찰나를 표준렌즈로 담았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에는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대사가 있다. 우리는 삶에서 늘 두 개의 심연을 동시에 관조해야 하는데 드높은 이상과 고귀함의 심연이 하나이고 가장 저열하고 악취 나는 타락의 심연이 다른 하나다. 이 대사는 김우영이 셔터를 누르기 위해 방랑을 자처하는 삶의 태도와 닮았다. 그가 지구의 속살인 사막을, 대로가 아닌 인적 없는 벌판과 그 위에 뼈처럼 서있는 빌보드와 가건물에 셔터를 누르는 건 유한과 무한, 세속과 영속의 두 심연을 오가는 행위처럼 해석된다. 그의 풍경 사진이 단순히 미적으로 아름다움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시간의 퇴적(사막), 삶의 흔적(빌보드), 빛(야광 테이프 래핑)을 염두하는 건 삶의 찬란과 비참을 동시에 사유한 결과일 것이다.
신비, 꿈, 마법은 현실과 비현실, 자명한 사실과 불확실성, 즉 빛과 어둠의 동시적 긴장관계에서 생겨난다
-파트릭 모디아노, 『잠자는 추억들』
어떤 꿈이나 초현실이 삶과 연결되는 방식은 정확히 두 세계가 나누어지는데서 생기는 게 아니고 두 개가 어렴풋하게 겹쳐지는데서 생긴다. 그래서 꿈은 현실의 변형처럼 보이고 현실은 꿈을 속재료 삼아 발현되는 것이다. 풍경은 과거의 꿈과 삶이 뒤범벅된다. 가장 뜨겁고 환한 낮에 별이 보이지 않아도 안심하듯 파도 많은 밤에 섬이 보이지 않아도 순한 잠을 자듯. 절해처럼 그렇게. 풍경은 놓여 있고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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