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FACES: 표면들 기간 : 2025-08-21 ~ 2025-09-13 장소 : 유엠 갤러리 문의처 : +82-2-515-3970 요금 : 무료 전시 서울

상세정보

하수민 개인전 <SURFACES: 표면들>

2025. 08. 21. - 09. 13.

◎ SURFACES: 표면들

사진은 보통 무언가를 기록하기 위해 찍힌다. 그러나 하수민의 회화는, 사진이 담지 못한 것들을 다시 마주하기 위해 시작된다. 이번 개인전《표면들》은 작가가 수년간 이어온 작업의 축적이자, 회화가 감각할 수 있는 시간과?기억, 부재의 결을 묻는 조용한 질문이다.

하수민은 낡은 필름 사진을 화판 크기로 확대하고, 그 이미지의 흐려진 외곽선과 바랜 색감을 동양화의 방식으로 옮긴다. 붓으로 겹겹이 쌓은 물감은 단순한 재현이 아닌, 시간 그 자체의 물성을 가시화한다. 작가는 사진 속 인물이 누구인지, 언제 찍혔는지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장면에 자신이 없었다는 사실, 기억되지 않은 채로   남은 잔류의 감각에 주목한다. 회화의 표면은 곧 시간의 표면이다. 닦이고 바래고 쌓인 감정의 흔적은 이미지보다 더 깊은 기억을 불러낸다. 하수민의 회화는 어떤 확언도 하지 않는다. 대신 관람자에게 “그때, 그 자리에 없었던” 누군가의 부재를 조용히 감각하게 만든다.

《표면들》은 하수민 작가의 첫 개인전으로, 30호에서 100호에 이르는 신작 회화와 소형 작업 일부로 구성된다. 회화라는 반복과 삭제의 행위를 통해,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 감정의 층위들을 천천히 드러내는 전시가 될 것이다.

◎ 부재하는 장면

나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경험하지 못한 과거의 순간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이를 회화로 전환하는 작업을 한다. 사람들이 사진을 통해 보존하고자 하는 순간들은 대개 축하, 환희, 유쾌함 같은 긍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되지만, 이 장면들이 개별적 삶에 녹아 들게 되면 오히려 복잡하고 다면적인 정서로 치환되기도 한다. 동일한 경험을?공유 했다고 느껴지는 장면이라도, 그것을 기록한 주체가 타인이라면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으로 다가온다.

화면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원본 사진의 분위기나 색감, 구도 등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왜곡하거나 낮은 채도의 색감을 활용하여 감정의 거리를 만들어낸다. 이는 특정한 기억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고,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가게끔 한다. 사진은 회화로 번역되며, 기억은 이미지로 재해석된다. 경험하지 못한 장면들은 나의 시선과 사고로 하여금??비틀어지고 다듬어진다. 이질적인 감정들은 화면 위에 혼재하며, 시각화된 이미지들은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반추할 수 있는 장치로 기능한다. 나는 회화적 재해석을 통해 타인의 과거가 어떻게 나의 감각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전환되는지를 실험하고 있다. 이로써 회화는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에 자리한 공백을 드러내는 도구가 된다.

◎ 남겨진 형상들

시간은 언제나 흘러가지만, 그 흐름이 선형적이지는 않다. 어떤 순간은 빠르게 사라지고, 어떤 순간은 반복되어?되돌아온다. 사라진 줄 알았던 이미지가 문득 떠오르고, 머물렀던 자리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적이?내려앉는다. 그 지나감 속에 남겨진 잔류들을 이 자리에 서서 바라본다. 내 회화 작업은 지워지지 않은 감각의 층위들을 쌓는 과정이다. 어떤 상실의 잔해이기도 하고, 고정되지 않은 서사의 조각이기도 하다. 인물과 사물은 화면 속에서 뚜렷한 의미를 갖기보다, 흔들리는 존재감으로 남는다. 누군가를 그리지만, 그의 표정은 흐릿하거나 지워지고, 배경은 조성된 무대 공간과 같이 어딘가 낯선 인상을 준다. 이는 기억이 가진 불완전함에서 비롯된 구조이기도 하다.

나는 축적과 소멸, 그 이중적인 시간의 흐름에 주목한다. 반복되는 붓질, 겹쳐지는 표면, 사라진 흔적 위에 덧씌워진 형상들. 그것은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나 닫히지 않은 이야기의 결과로 남는다. 표면의 탈락, 왜곡된 형태 들은 모두 화면에 머물지 못한 시간의 잔상이다. 이러한 방식은 특정한 순간을 다시 불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둘러싼 공기와 감각의 흐름을 화면 위에 머무르게 하기 위한 시도이다. 상실된 것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이 남긴 흔적만은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 잔재들을 붙잡기 위해 나는 물감을 덧대고, 표면을 밀고 당기며, 어떤 층은 드러내고 어떤 층은 가린다. 그림은 시간의 중첩과 감정의 잔류가 맺힌 하나의 피부이다. 그 위에 남은 것은 단지 이미지가 아니라, 사라지는 중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무언가다. 나는 그 무언가를, 끝내 사라지지 않는 감각을 붙잡기 위해 이 화면 앞에 계속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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