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왜곡된 과거와 미래가 감각되지 못하는 시간들로 무뎌질 때 쯤, 강물도 그렇게 멈추었다. 지독한 악취로 가득한 시간을 감각하지 않고서는 현실의 경계선에 존재할 수 없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그 경계의 현실을 감각하지 않고서 우리는 살아간다 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이제껏 살아온 적이 없던 것처럼 오늘을 맞이해야 한다.
시간은 있다. 시간은 없다.
시간은 기억으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통해 드러나는 시스템입니다. 오늘 .SYS속에 깃발을 잃어버린 우리가 살아갑니다. 깃발은 우리의 꿈, 지향을 잃은 말의 갈퀴는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선택되지 않은 시간은 우리가 감각하지 못하는 시스템의 오류이며, 그 시간은 바로 우리의 꿈이자 깃발의 상실인 것입니다. 가쁜 호흡을 인내하며 달리는 말은 지축을 흔들어 깨우고, .SYS가 불러들인 시간과 존재의 뒤엉킨 파편들은 소용돌이치는 과거와 미래의 경계에 멈춰 섭니다. 왜곡된 과거와 미래가 감각되지 못하는 시간들로 무뎌질 때 쯤, 바다를 향하던 강물도 그렇게 걸음에 멈춥니다. 무뎌진 시간에 대한 감각은 현실의 경계선에서 우리들 스스로를 소외시켰고 쪼개고 쪼개어 낸 나락만큼 가벼운 존재의 현실이 과거도 미래도 선택되지 않은 꿈과 같은 시간 속에 펼쳐집니다. 돌아갈 곳도 찾아갈 곳도 없는 황량한 초원을 숨 가쁘게 질주하는 사람들은 찰나의 땅과 조우하며 과거의 이전과 미래의 이후를 여는 숨 가쁜 노동. 그렇게 창조의 시간을 부르는 욕동으로 미쳐 날뛰는 몸들의 질주가 우리의 선택이어야 합니다.
시간은 있고 없다.
[기획의도]
이 작품은 10년 전 몽골에서 보았던 황량한 초원의 풍경으로 시작됩니다.
마른 먼지바람이 소용돌이치는 초원에 행색이 남루한 한 사내의 흔들림 없는 시선, 그리고 낡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음악은 몽골의 전사들의 용맹성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바라는 과거와 미래는 없습니다.
화려한 전성기의 옛 성터조차 흔적이 없습니다.
강물의 흐름조차 바꿨다던 몽골제국의 미래는 낡은 건물들의 균열 이상 희망도 없어 보였습니다.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는 몰라도 늘 지평선을 향하여 고삐를 늦추지 않는 용맹스런 전사가 그 곳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해가 뜨면 하루를, 해가 지면 어제를, 달을 보고 한 해를, 별을 보고 미래를 봅니다. 우리는 빛이나 소리와 달리 우리는 시간을 감지할 명확한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시간을 감지하기 위해 시작과 끝을 과거와 미래로 대치하여 그것을 시스템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의 필요에 시스템은 만들어 집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는 과거와 미래만이 있을 뿐 현재가 빠져 있습니다. 시스템은 우리의 존재적 아픔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친 인류와 환경에는 오래된 미래라는 이름의 인위적 과거로의 위로가 되며.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에게 미래는 희망이라는 이름과 다름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의 시스템은 사라졌어야 할 화석을 세워 거룩하게 하고, 죽지도 않은 생명을 살리겠다하고 보란 듯이 죽이는 것도 모자라 눈뜬 채 강탈당해야만 하는 무기력한 현재를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아티스트 소개]
(사)트러스트무용단은 1995년 창단되어, ‘사람을 중심으로 함께 나눌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슬로건 아래 창작과 공연, 교육과 나눔, 국제교류 등의 사업을 통해 춤과 삶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우리식의 창작에 대한 깊은 신뢰를 기반으로, 서양 춤과는 다른 우리 옛 연희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연출과 창작방법론의 연구, 시대와 지역을 넘어선 다양한 몸짓수련을 진행 중이다. ‘오래된 새로움’을 지닌 창작품으로 관객과 만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