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수집해 온 소장품 중에서 잊는 행위와 그로 인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다양한 맥락을 담고 있는 작품들을 남서울미술관에서 겨울 동안 선보이고자 마련되었다. 전시 제목 《망각에 부치는 노래》는 이번 출품작 중 하나인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 제목 “Ode à l’oubli”를 인용한 것이다. ‘Ode’는 어떤 사물이나 인물에 대한 찬가(讚歌)를 뜻하는데, 특히 낭만주의 시인들이 특정 대상에 관한 시를 쓸 때 자주 등장하던 단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망각에 부치는 노래’는 단지 기억을 잊고자 하는 마음을 의미하기보다는, 잊는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해 써내려간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전시와 동명의 작품 <망각에 부치는 노래>(2004)는, 루이즈 부르주아가 결혼 후부터 노년이 되기까지 일상에서 사용한 갖가지 의류를 자르고 꿰매어 만든 하나의 그림책이다. 좋은 기억도, 아픈 기억도 정성스럽게 해체하고 꿰매어 새로운 차원의 창조물로 탄생시킨 부르주아의 시적인 태도는 우리가 기억과 경험을 대하는 다양한 접근 방식을 포용하는 제스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전시에서는 잊어가는 과정, 잊고 있었지만 문득 떠오르는 기억, 특정한 경험에서 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지만 상상 속에서 더 사실적으로 느껴진 것에 대한 표현, 지나간 여정에 대한 재해석 등을 담은 쿠사마 야요이, 루이즈 부르주아, 김환기, 유영국, 김봉태, 유근택, 노충현, 박준범, 김소라, 지석철, 주태석, 김동규, 오인환의 작품을 통해 망각과 회상에 대한 다채로운 시선을 제안한다.
그리스 신화 속 망각의 신 레테(Lethe)는 망각의 강을 통해 죽은 이들의 기억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고, 그들을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보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망각은 단지 기억을 잊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망각 뒤에 침잠되는 진실과 재생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된다.
사회적 사건과 거대 담론 뒤에 가려져있으나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개인의 일상에 대한 미시적 시선들, 앞모습보다도 더 많은 진실을 담고 있을지 모르는 뒷모습, 진리로 간주되는 대상에 대한 회의적 시선과 재해석, 단순화되고 추상화된 그리드 속에 은폐된 도시인의 이면에 대한 이야기 등을 담은 뮌, 송상희, 김세진, 홍순명, 문영민, 이효연, 장 미셸 바스키아, 서용선, 김범, 김인배, 사라 모리스, 김용관, 주재환, 조나단 보로프스키, 피터 할리의 작업은 우리로 하여금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것과 절대적으로 여겨졌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숙고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남서울미술관에서 서울시립미술관의 주요 소장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전시가 열리는 기간 동안 한 해의 마지막과 시작을 맞이하는 관람객들이 작품을 통해 각자의 내밀한 기억을 반추하면서, 보다 친근하게 전시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