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임시변통
IMMORTAL MAKESHIFTS
2017년 9월 23일(토) - 10월 10일(화)
문래예술공장 스튜디오 M30
Sep 23 - Oct 10, 2017
Seoul Art Space Mullae Studio M30
김월식 / Kim Wolsik
모토유키 시타미치 / Motoyuki Shitamichi
언메이크랩 / Unmake Lab
이동욱 / Lee Dongwook
최제헌 / Choi, je hun
전시기획: 임종은 / Jongeun Lim
불멸의 임시변통은 다른 내용과 맥락을 가지고 활동하는 김월식, 시타미치 모토유키, 언메이크랩, 이동욱, 최제헌의 작품 세계를 ‘임시변통’으로 주목하고자 한다. 본래 임시변통은 갑자기 터진 일을 우선 간단하게 둘러맞추어 처리한다는 미봉의 고사 즉, 병법으로부터 유래한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과 경험을 통해 역사적인 발명품이나 대량생산품의 초기 모델이 모두 임시와 변통의 성격을 가졌고 결과적으로 꽤 지속할 수 있는, 심지어 불변을 꿈꾸는 것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예술적 실천을 임시변통으로 살펴보면, 작가들이 이러한 시작점의 상태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삶과 일상 그리고 예술활동의 과정 중에 겪는 일에 대응하고 성찰하는 그들만의 방식과 태도가 작품 속에 생생히 살아있음을 알게 된다. 이제 그들의 작업에서 임시방편은 최종적인 결과가 아니라,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와 목적을 추적하는 여정임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전시장은 언제나 기획자에게 임시변통을 요구하는, 전시 기간 동안에만 허락된 장소이다. 화이트큐브 형태가 아니라 공장처럼 보이는 문래예술공장 스튜디오 M30은 작가들의 작품과 전시를 통해 전시장이 되었다가 다시 일상공간으로 전환되고 유동하는 경계와 상상의 장이다.
Immortal Makeshifts focuses on the works of Kim Wolsik, Motoyuki Shitamichi, Unmake Lab, Lee Dongwook and Choi, je hun, whose artwork occupy varying contents and contexts, and examines their works in the frame of the “makeshift.” Imsibyeontong (臨時變通), the Korean word for “makeshift,” originates from the art of war, and refers to a temporary, adaptable remedy for a sudden, unexpected disaster. However, as we are doubtlessly aware from our daily lives and experiences, every invention and mass-produced product throughout history began with a temporary and adaptable prototype, and these makeshift products became the starting point for things that endure for a long time, even to the point of being immortalized. Above all, when examining artistic practices as a makeshift, the said starting point has earned its right to be preserved, and this makeshift embodies the artist’s method and attitude in responding to and reflecting upon everyday experiences and creative activities. Their creative activities show that a makeshift product is not the final result, but a journey to follow its implied meaning and purpose. Furthermore, the exhibition space constantly demands the exhibition curator to work in a makeshift way, and constitutes a space that is only available during the exhibition period. Seoul Art Space Mullae Studio M30, where the exhibition is to be held, is not a sterile white cube but a factory-like space. It represents a borderline space and playground for imagination where the same place is turned into an exhibition hall through works of art and transformed back into an ordinary space.
김월식은 한국 근대사 속 임시변통을 전시장으로 소환한다. ‘빨리빨리’로 축약되는 압축 성장은 임시변통의 또다른 표현으로 우리는 아직 그 연속선 상에 서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비평과 반성이 지금 우리 안에서 작동한다. 근대라는 좌대는 대한민국의 근대화, 산업화와 함께 성장한 다양한 공동체에 견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신념의 정체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성장의 이데올로기를 만든 여러 동력은 공동체의 존립과 지속을 위한 결속의 장치로서 임시적이지만 절대적인 윤리를 만들어 내고, 이 윤리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의 성장은 개인의 개별적 욕망과 상상력들을 평가절하하며 삶의 다양성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 없는 성공신화를 만들어 왔다. 근대라는 좌대는 성장의 풍경에 늘 함께 등장한 ‘희망’의 기표를 지운 ‘모더니즘의 좌대’이다. 이것은 한때 절대적이고 이상적인 예술을 받들고 세워두었던 ‘좌대’처럼 공동체의 성공신화를 위해 엎드렸던 개인의 희생과 그 가치를 상징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는 우리가 겪은 서구화나 근대화의 정체성과 근원을 묘하게 닮은 교회 탑 양식을 채집하고 조사하여 눈에 보이도록 만들었다. 근대라는 좌대는 오래된 가구 등 목재를 재료로 하고 있지만, 매끈하고 유려한 미술작품의 모습으로 다시 전시장의 좌대에 놓인다.
시타미치 모토유키는 아이치현의 자신의 집에서 후쿠오카로, 거기서부터는 배를 타고 대마도를 거쳐 한국의 부산으로, 그리고 부산에서는 차를 빌려 남해안과 거제도를 여행하면서 전시 장소인 서울의 문래동까지 왔다. 이 여행에서 그는 여러 마을의 사람들이 자연에서 일상생활로 가지고 온 돌의 다양한 쓰임에 대해 조사했고, 돌과 함께 그곳의 생활과 문화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기록하여 New Stone Tools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는 여행 중에 주운 돌 30개를 전시장에 가져온 뒤, 마찬가지로 여행 중 기록한 사진으로 책을 만들고 그 안에 돌을 끼워 넣어 작품을 완성했다. 책에는 돌의 쓰임이 마치 카탈로그처럼 수록되어 있고 ‘임시방편’의 훌륭한 도구인 ‘돌’이 함께 들어가 있기 때문에, 돌의 쓰임에 대한 즐거운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Mother's Covers는 작가가 결혼을 계기로 새로운 가족(장모님)과 살게 되면서 2년 정도 진행한 작품이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어머니(장모님)의 차를 내리는 용기가 여러 가지 뚜껑으로 항상 바뀌어 덮여 있다는 것을 알아채게 되었다. 작가는 식탁 위에 서투르고 어긋나있지만 새롭고 흥미로운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고, 매일 아침 아무도 모르게 카메라를 손에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주방으로 향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으로 기록된 New Stone Tools와 Mother's Covers는 우리의 일상에서 보여주는 임시변통의 흔한 광경이지만 호기심과 함께 다정한 시선으로 임시변통의 묘수를 전시장에 꺼내 놓는다.
언메이크랩은 기술이 가지는 ‘변통’의 과정과 태도에 주목한다. 그들은 초기 기술이 ‘자연현상에 기반해 그 현상들을 변환 또는 증폭하는 것’이란 측면에서 기존의 성질, 기능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거나 제어하려는 임시변통의 태도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기술은 그 본연의 기원에서 멀어져 더욱더 초월적인 ‘자동화’에 대한 열망을 실현시켜 가고 있다. 모터의 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기계자동화의 시대를 거쳐 이제는 특정한 틀이나 도식 즉 알고리즘을 통한 ‘자동생성’이라는 열망이 이루어지는 시대로 향한다. 만사형통은 이러한 기술이 가진 임시적 혹은 초월적 변통과 과정,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자동화의 단면을 포착하여 로우테크적으로 개입해 보는 작업이다. 시소운동으로 바뀌는 모터의 회전은 태블릿을 계속 출렁이게 하고 그 화면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화면을 터치하며 소리를 발생시킨다. 이 과정은 무작위성이 결합된 일종의 알고리즘이 되어 화면을 건드리고, 그것은 실제보다 더욱 생생한 물방울 소리를 발생시켜 우리에게 들려준다. 언메이크랩은 이 과정을 통해 일시성과 초월성, 무작위와 메커니즘, 실제와 가상에 대한 환기를 요청하며 ‘코드(Code)’가 점점 ‘살(Flesh)’로 느껴지는 시대의 ‘변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동욱에게 임시변통은 절박함으로 요약된다. 그는 사람들이 막다른 상황에서 물건을 수리하거나 새롭게 만들게 되는 임기응변적인 행위와 태도를 작품제작의 원리와 방법으로 활용한다. 작가는 전시장의 기존 설비인 수도시설 등을 이용하여 수로 깊고 넓은을 만들었다. 이 수로는 수도꼭지와 수조에서 벗어나 긴 물길로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물길의 확장’이라는 의도와 목적을 위해 발생하는 여러 사건이다. 이 사건은 작가의 관심사가 담긴 일상과 작업 환경에서 끌어온 소재들로 구성되어 위태롭지만 기필코 이어지는 물길이 된다. 또한 이 작품에 길고 가는이라는 작품이 연결되어 두 작품이 서로를 지지한다. 사슬의 본래 재료인 쇠뿐만 아니라 나무, 헝겊, 고무, 플라스틱 등 온갖 종류의 소재들이 사슬이 되어 한 줄로 연결되었다. 이것은 단단하고 견고한 사슬 본연의 기능을 하지는 못하지만 제 역할을 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의 절박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뒤집어보면, 눈속임을 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형식을 갖추거나 시늉을 할 뿐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들의 허무함과 이미 전제된 실패의 측은함을 연출한 것이기도 하다.
최제헌은 Pop-up Store in Mullae Art Factory Collection of “Choi's Choice”를 준비하며 문래동 공장 기계들의 움직임, 그리고 점포마다 적재된 사물들에 흥미를 느꼈다. 작가의 눈길을 끈 공장의 역동적인 분위기와, 공간 활용을 위해 물건을 최대한 많이 쌓아두고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천으로 꼼꼼히 포장해 덮어둔 광경은 문래창작촌 근처에서 흔히 마주 칠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작가는 특유의 조형언어와 재치를 활용해 이 장면이 전시장과 일상 사이를 넘나들게 했고, 물건들이 재료로부터 쓸모있는 사물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로 구성하고 엮어냈다. 외부 공간의 일상적인 사물은 작가에 의해 전시장 안의 조형 재료가 되고, 이를 통해 전시장 안과 밖의 구분이 일시적으로 해체되고 교차된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즉 가공이라는 과정 전후로 구별되는 재료(물건)의 쓰임은, 예술적 행위 안에서 은유적으로 드러난다. 이를 위해 작가는 문래예술공장에 원래 있었던 천장 레일 받침대와 대형 철문에서 조형적 연결성을 찾아가고 이야기를 구성했다. 사물은 재배치되고, 전시장 기둥과 닮은꼴의 골판지 기둥이 세워지며, 전시장 벽은 컬러 강판으로 가려져 공간이 교착된다. 그리고 발견한 물건(전시장 바닥 롤 매트 거치대 등)에 일련의 자재들을 더하여 마치 컨베이어 설비 같은 진열대를 놓았다. 전시장은 철이 가공되며 적재된 진열품들이 설치되는 현장이 되고, 동시에 작가가 일상의 현장에서 발견한 미적 순간으로 전시장이라는 공간을 만들어낸다.